第341篇 秦攻赵赵王使赵括奔

出处:战国策·秦策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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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原文(文言文)

秦攻赵,赵王使赵括为将,代廉颇。蔺相如曰:“王以名使括,若胶柱而鼓瑟耳。括徒能读其父书传,不知合变也。”王不听,遂将之。赵括自少时学兵法,言兵事,以天下莫能当。尝与其父奢言兵事,奢不能难,然不谓善。括母问奢其故,奢曰:“兵,死地也,而括易言之。使赵不将括即已,若必将之,破赵军者必括也。”及括将行,其母上书言于王曰:“括不可使将。”王曰:“何以?”对曰:“始妾事其父,时为将,身所奉饭饮而进食者以十数,所友者以百数;大王及宗室所赏赐者,尽以予军吏士大夫,受命之日,不问家事。今括一旦为将,东向而朝,军吏无敢仰视之者;王所赐金帛,归尽藏之,乃日视便利田宅可买者。王以为若其父乎?父子不同,执心各异。愿王勿遣。”王曰:“母置之,吾已决矣。”括母因曰:“王终遣之,即有不称,妾得无随乎?”王许诺。赵括既代廉颇,悉更约束,易置军吏。秦将白起闻之,纵奇兵,佯败走,而绝其粮道,分断其军为二,士卒离心。四十余日,军饿,赵括出锐卒自搏战,秦军射杀赵括。括军败,数十万之众遂降秦,秦悉坑之。赵前后所亡凡四十五万。

📖 白话文翻译

秦が趙を攻めたとき、趙王は趙括を廉頗の代わりに将とした。藺相如は諫めて言った、「王はただ名だけで趙括を用いるのは、膠で琴柱を貼り付けて琴を弾くようなもので、音律を調えることができませぬ。趙括はただ父の遺した兵書を読むだけで、臨機応変の術を知りませぬ。」趙王は聞き入れず、かたくなに趙括を用いた。趙括は幼いころから兵法を学び、軍談を好み、天下に敵う者はいないと自負していた。かつて父の趙奢と兵法を論じたとき、趙奢は彼を論破できなかったが、褒めることもなかった。趙括の母が趙奢にその理由を問うと、趙奢は言った、「戦いは生死に関わる大事なことだ。それなのに趙括は軽々しく口にする。趙が趙括を将としないならばそれでよいが、もし必ず用いるならば、趙軍を滅ぼす者は必ずこの子であろう。」趙括がまさに出陣しようとしたとき、その母は趙王に上書して言った、「趙括は将にふさわしゅうございません。」趙王が「なぜか」と問うと、母は答えた、「かつてわたくしがその父に仕えたとき、父は大将でありながら、自ら飲食を捧げて客をもてなすこと数十人、友とした者は数百人おりました。大王や宗室から賜った財物は、すべて将士や僚属に分け与えました。命令を受けたその日からは、家のことを顧みる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今、趙括は将となるや、東を向いて座り、軍吏たちはだれも顔を上げて見る者がないありさま。大王が賜った金銀や布帛は、すべて家に持ち帰ってしまい、さらに日々安い田や宅地を求めて買い集めております。大王は彼が父に似ているとお思いですか。父子の心は異なっております。どうか大王、彼を遣わさないでくださいませ。」趙王は言った、「お前は構うな。わしの決意は固い。」趙括の母は言った、「大王がどうしても遣わされるなら、もし彼に不手際がございましたら、わたくしまで連座しないでいただきたい。」趙王はこれを許した。趙括は廉頗に代わると、すべての旧来の規律を改め、多くの将校を入れ替えた。秦の大将白起はこれを知ると、奇兵を繰り出し、偽って退却し、ひそかに趙軍の糧道を断ち、趙軍を二つに分断した。兵士たちの心は離ればなれとなった。四十余日が過ぎ、趙軍の食糧は尽きた。趙括は自ら精鋭を率いて包囲を突破しようと奮戦したが、秦軍の乱れ矢に射抜かれて死んだ。趙軍は大敗し、数十万の兵が秦軍に降伏したが、秦軍は彼らをすべて生き埋めにした。趙は前後して合わせて四十五万人を失った。

💡 商战启示录

조괄(趙括)의 패배는 그 근원이 ‘지상담병(紙上談兵)’, 즉 이론만 있을 뿐 실전 경험이 없고, 게다가 자만심이 강하며 부하를 아끼지 않은 데 있었다. 현대 비즈니스에서도 많은 ‘스타 매니저’나 ‘명문 MBA’ 출신들이 기업에 공수(空輸)된 후 서적 속 모델만 그대로 적용하고, 업계의 현실과 조직 문화를 무시한 채 전략적 실패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어느 대형 인터넷 기업은 막대한 연봉을 들여 다국적 고위 임원을 영입해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밀어붙였으나, 현지 시장의 성숙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금을 태워 보조금을 살포한 결과 사용자 유지율이 극히 낮아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났다. 반면 화웨이(華爲)의 런정페이(任正非)는 “포성이 들리는 곳에서 포화를 요청하게 하라”고 강조하며 일선의 경험을 존중하고, 이론을 맹목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피함으로써 비로소 안정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조괄의 패배는 또한 지도자가 ‘합변(合變)’의 능력, 즉 환경에 따라 전략을 유동적으로 조정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함을 경고한다. 코닥은 필름 사업에 집착하며 디지털 전환을 거부하다 결국 시장에서 도태되었고, 노키아는 일찍이 터치스크린 기술을 개발하고도 보수적인 태도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상전(商戰)은 병법과 같아서 시장은 순식간에 변한다. 오직 이론과 실천, 그리고 유연한 대응을 결합하고, 효과적인 피드백 체계를 구축하며,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에야 비로소 조괄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