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232篇 燕昭王伐齐

出处:战国策·燕策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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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原文(文言文)

燕昭王收破燕后即位,卑身厚币,以招贤者,欲将以报仇。故往见郭隗先生曰:“齐因孤国之乱,而袭破燕。孤极知燕小力少,不足以报。然得贤士与共国,以雪先王之耻,孤之愿也。敢问以国报仇者奈何?”郭隗先生对曰:“帝者与师处,王者与友处,霸者与臣处,亡国与役处。诎指而事之,北面而受学,则百己者至。先趋而后息,先问而后嘿,则什己者至。人趋己趋,则若己者至。冯几据杖,眄视指使,则厮役之人至。若恣睢奋击,呴藉叱咄,则徒隶之人至矣。此古服道致士之法也。王诚博选国中之贤者,而朝其门下,天下闻王朝其贤臣,天下之士必趋于燕矣。”昭王曰:“寡人将谁朝而可?”郭隗先生曰:“臣闻古之君人,有以千金求千里马者,三年不能得。涓人言于君曰:‘请求之。’君遣之。三月得千里马,马已死,买其骨五百金,反以报君。君大怒曰:‘所求者生马,安事死马而捐五百金?’涓人对曰:‘死马且买之五百金,况生马乎?天下必以王为能市马,马今至矣。’于是不能期年,千里之马至者三。今王诚欲致士,先从隗始。隗且见事,况贤于隗者乎?岂远千里哉?”于是昭王为隗筑宫而师之。乐毅自魏往,邹衍自齐往,剧辛自赵往,士争凑燕。燕王吊死问生,与百姓同其甘苦。二十八年,燕国殷富,士卒乐佚轻战。于是遂以乐毅为上将军,与秦、楚、三晋合谋以伐齐。齐兵败,闵王出走于外。燕兵独追北,入至临淄,尽取齐宝,烧其宫室宗庙。齐城之不下者,唯独莒、即墨。

📖 白话文翻译

연소왕은 패잔된 연나라를 수습한 뒤 즉위하였다. 그는 몸을 낮추고 후한 예물로 현사를 불러들이고자 하여, 그들의 힘을 빌려 원수를 갚으려 하였다. 이에 곽외 선생을 찾아가 말하였다. "제나라는 우리나라의 내란을 틈타 연나라를 격파하였다. 나는 연나라가 약소하여 원수를 갚기에 부족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만약 현사를 얻어 함께 나라를 다스려 선왕의 치욕을 씻을 수 있다면, 이것이 나의 소원이다. 청컨대 나라를 위하여 원수를 갚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곽외 선생이 대답하였다. "제왕의 업을 이루는 군주는 현사를 스승으로 삼고, 왕업을 이루는 군주는 현사를 벗으로 삼으며, 패업을 이루는 군주는 현사를 신하로 삼고, 망국의 군주는 하인을 신하로 삼습니다. 만약 자신을 낮추고 공손히 현사에게 배운다면, 자신보다 백 배 뛰어난 인재가 올 것입니다. 만약 남을 먼저 하고 자신을 뒤로 한다면, 자신보다 열 배 뛰어난 인재가 올 것입니다. 만약 남이 하는 대로 자신도 한다면, 자신과 재능이 비슷한 인재가 올 것입니다. 만약 책상에 기대고 지팡이를 짚으며 눈치와 기세로 부린다면, 오직 하인만이 올 것입니다. 만약 방자하고 포악하며 함부로 꾸짖는다면, 오직 노예만이 올 것입니다. 이것이 고대에 왕도를 행하고 인재를 불러들이는 방법입니다. 대왕께서 만약 널리 국내의 현사를 선발하고 직접 그들의 문하를 방문하신다면, 천하 사람들이 대왕께서 현신을 방문하셨다는 말을 듣고 천하의 현사들이 반드시 연나라로 달려올 것입니다." 소왕이 말하였다. "내가 마땅히 누구를 먼저 방문해야 하는가?" 곽외 선생이 말하였다. "제가 듣건대 고대에 어떤 군주가 천금으로 천리마를 구하려 하였으나 삼 년이 되도록 사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어떤 시종이 말하기를 '저에게 찾게 해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군주가 그를 보냈습니다. 석 달 만에 천리마를 찾았으나 말은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백 금으로 말뼈를 사서 돌아와 보고하였습니다. 군주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원하는 것은 살아있는 말인데, 죽은 말을 사서 무엇에 쓰겠는가? 오백 금이나 낭비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시종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죽은 말도 오백 금으로 샀는데, 하물며 살아있는 말이겠습니까? 천하 사람들이 반드시 대왕께서 말을 잘 사신다고 여겨, 말이 곧 올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과연 일 년도 되지 않아 세 필의 천리마가 보내져 왔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만약 현사를 불러들이고자 하신다면, 먼저 저 곽외부터 시작하소서. 제가 오히려 중용된다면, 하물며 저보다 현명한 사람이겠습니까? 그들이 어찌 천 리 길을 멀다 여기고 오지 않겠습니까?" 이에 소왕은 곽외를 위하여 궁실을 짓고 스승으로 삼았다. 악의가 위나라에서 왔고, 추연이 제나라에서 왔으며, 극신이 조나라에서 와서 현사들이 서로 다투어 연나라로 달려왔다. 연왕은 죽은 이를 애도하고 산 이들을 위문하며 백성과 고락을 함께하였다. 이십팔 년이 지나 연나라는 넉넉하고 부유해졌으며, 병사들은 생활이 안락하여 싸우기를 즐겨 하였다. 이에 소왕은 악의를 상장군으로 임명하고 진나라, 초나라, 삼진과 함께 모의하여 제나라를 공격하였다. 제나라 군대는 크게 패하였고, 제민왕은 도망쳐 나라를 떠났다. 연나라 군대는 단독으로 패잔병을 추격하여 임치에 들어가 제나라의 모든 보물을 약탈하고 제나라의 궁실과 종묘를 불태웠다. 제나라에서 함락되지 않은 성은 오직 거와 즉묵뿐이었다.

💡 商战启示录

연소왕의 제나라 정벌 성공은 핵심적으로 '봉황을 불러들이는 둥지 짓기'와 '장기주의'라는 상전(商戰)의 지혜에 있었다. 소왕은 자신이 약소하여 정면 승부가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그는 먼저 곽외의 '천금매골' 전략을 통해 높은 자세와 실질적 투자로 정상급 인재를 끌어들였으니, 이는 마치 현대 기업이 지분 인센티브, 고액 연봉 문화, 또는 스타 팀 영입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과 같다. 예컨대 애플이 초기에 스티브 잡스를 복귀시키거나, 구글이 막대한 자금으로 인공지능 전문가를 영입한 것은 모두 '매골'의 현대판이라 할 수 있다. 소왕은 단지 현자를 초빙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곽외에게 스승의 예를 갖추며 신뢰와 존중을 구축했고, 이에 악의, 추연 등 정예 인재들이 잇달아 투신했다. 이는 기업 리더에게 '인재 존중'의 문화를 조성하라는 교훈을 주며, 직원을 단순한 도구로 보지 말아야 함을 시사한다. 다음으로 소왕은 '초상지문(吊死問生), 백성과 고락을 함께하기'를 28년간 실천하며 국력을 축적했고, 병사들은 기꺼이 싸우기를 원했다. 이는 상전에서의 '장기주의'에 해당한다. 즉 속전승을 추구하지 않고 지속적인 제품 연마, 사용자 평판, 브랜드 침전을 통해 해자(護城河)를 형성하는 것이다. 화웨이가 초기부터 연구개발에 투자를 지속한 끝에 수년 후 5G 분야에서 폭발적 성과를 낸 것이 그 예이다. 소왕이 마침내 여러 나라와 연합하여 제나라를 정벌한 것은 상전에서 생태계 협력(예: 합종)을 잘 활용하면 자신의 우위를 확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종합하면, 이 사례는 현대 기업가에게 다음을 상기시킨다. 먼저 진심과 제도로 정상급 인재를 유치하고, 이어서 인내심과 사용자 중심으로 내공을 다져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약자의 강자 제압'이라는 역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