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괴가 한나라의 재상이 되었고, 엄수 또한 한애후의 총애를 받았다. 이에 두 사람은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게 되었다. 엄수는 일찍이 공개적으로 한괴의 잘못을 지적했고, 한괴는 이 때문에 조정에서 엄수를 크게 꾸짖었다. 엄수는 칼을 빼어 한괴에게 달려들었으나, 여러 사람이 구해 주어 피를 보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엄수는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도망쳐 나와 여러 나라를 떠돌며 자신을 대신해 한괴를 시해할 사람을 찾았다. 제나라에 이르러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했다. “지 땅의 깊은 우물가에 사는 섭정은 용감한 협사로, 원수를 피해 백정들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엄수는 이에 은밀히 섭정과 교류하며 후한 뜻으로 대우했다. 섭정이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누구를 쓰려 하십니까?” 엄수가 말했다. “나는 나를 대신해 한괴를 시해할 사람을 찾고 있으나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지금 그대가 용맹하다고 들었기에 그대와 사귀기를 바라며, 백금을 드려 그대의 어머니 장수를 축원하고자 합니다.” 섭정은 놀라며 더욱 그 후한 대우가 지나치다고 여겨 굳이 사양했다. 엄수가 억지로 주려 하자 섭정은 어머니가 늙으셨다는 이유로 사절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섭정은 움직여 홀로 칼을 짚고 한나라로 갔다. 한괴가 마침 집에 앉아 있었고, 병기를 든 호위가 많았다. 섭정은 곧바로 뛰어들어 섬돌을 올라 한괴를 찔렀다. 한괴는 도망쳐 한애후를 붙잡았고, 섭정이 칼을 휘두르자 한애후까지 함께 찔렀다. 좌우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섭정은 큰 소리로 외치며 수십 명을 죽이고, 곧바로 자신의 얼굴 가죽을 찢고 눈알을 파내며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 그 자리에서 죽었다. 한나라는 섭정의 시체를 저자에 내걸고 천금을 걸어 신원을 찾았으나 아는 이가 없었다. 섭정의 누이 섭형이 이 소식을 듣고 말했다. “내 아우는 지극히 어질다. 내가 내 몸을 아껴 아우의 명성을 묻어둘 수 없다. 이는 아우의 뜻이 아니다.” 이에 한나라로 가서 시체를 보고 말했다. “용감하도다! 그 기개가 성대하여 맹분과 하육보다 뛰어나고 성형보다 높도다. 이제 죽어 이름이 없으니, 부모는 이미 돌아가셨고 형제도 없으며, 이는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한 것이다. 내 몸을 아껴 명성을 드날리지 않을 수 없다. 내 아우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시체를 끌어안고 통곡하며 말했다. “이는 내 아우 지 땅 깊은 우물가의 섭정이다.” 또한 그 시체 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진·초·제·위 등 나라에서 이 소식을 듣고 모두 말했다. “섭정의 능력뿐만 아니라 그의 누이 또한 열녀다.” 섭정의 이름이 후세에 전해진 것은 그의 누이가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명성을 드날렸기 때문이다.